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어려운 이유는 분명하다.
그건 눈에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으며 어떠한 감각으로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다 기획 회의에 한 번 낀 적이있다. 제품에서 전하고자하는 메세지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보니 단어 자체에 매몰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고등학생부터 여러 다양한 공모전에 참가하면서도 늘 겪는 현상이다. 늘 나오는 아이디어는 공모전의 주제를 말장난으로 풀어낸 것이다. 예를 들어 "힐링캠프"를 주제로 어떤 이벤트를 할지 정하라는 미션이 떨어지면 생각하는게 "달링과 함께하는 힐링캠프" 이런 식이다. 뻔하다! (뻔하다도 짝꿍이 있다. Fun하다)
"힐링캠프...힐링캠프..." 단어에 갇혀서 생각하다보니 중심은 글자라는 도구에 가 있고 "왜" 힐링캠프라는 주제가 잡혔는가, 왜 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못한다. 정신차리고 나면 본질에서 한 참 떨어진 곳에 떨어진 뒤다.
얼마 전, 넷플릭스 <도로로>라는 애니메이션을 아주 재미있게 봤다.
서사의 주인공은 '도로로'라는 어린아이인데, '햣키마루'라는 형을 만나서 같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사실상 주인공은 '햣키마루'다. 도로로는 이누야샤의 가영이 포지션쯤된다. 흥미로운 점은 햣키마루는 태어났을때 신체 48군데를 귀신에게 먹힌채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햣키마루는 피부도 없고, 눈알도, 귀도, 코도, 척추와 팔 다리도 없다.
선천적 장애이기 때문에 어둠이 어둠인지조차 모른다. 오직 영혼만을 느낄 뿐이다.
작중에서는 해롭지 않은 영혼이라면 흰색, 귀신처럼 악한 영혼은 빨간색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햣키마루는 주인공답게 아주 강하다. 인간이 아닌 것처럼 움직이고, 귀신을 단칼에 베어낸다. 햣키마루가 그렇게 귀신을 베어내면 귀신에게 먹혔던 몸의 일부를 돌려받게 된다.
보통의 애니메이션은 회를 거듭할 수록 주인공은 강해진다.
하지만 햣키마루는 회를 거듭할 수록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옆에 붙어있는 꼬마 도로로는 "형아가 약해졌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귀신에게 빼앗겼던 피부, 귀, 목소리 등등 감각이 돌아오면서 햣키마루는 수많은 감각에 갑자기 노출된다. 영혼이라는 본질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다르게, 본질을 덮고 속이는 것들이 느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을 넘어서 생각하는 것, 모든 감각을 정상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내가 계속 해나가야하는 연습이다.
<생각 주머니>카테고리에서까지 개발 얘기는 하기 싫었지만, 개발 이야기로 넘어가보면 내가 정말 잘한다고 생각하는 개발자 두 분이 각각 해주신 얘기가 있다.
- 항상 "왜"냐고 물어라.
- 되어야하는 걸 먼저 생각하고, 그걸 되게 하는게 그 후다.
개발하다보면 본질에서 멀어질 수 있는 케이스가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기획 의도를 제대로 소화 못하고 이상하게 풀어나가는 것, 두 번째는 구현방법에만 얽매여서 삽질하는 것. 위 격언(?)이 필요한 상황에 각각 해당된다. 최근에 복잡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많이 느꼈는데, 결국에 본질에 도달 하느냐 아니냐하는 것에 달린 것 같다.
참 어렵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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